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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부장판사 프로필 -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우병우 구속영장)


이름 : 오민석

소속 : 서울중앙지방법원

현직 : 부장판사

학력 : 서울고등학고, 서울대학교 졸업   

사업시험 36회

연수원 : 26기

경력

1994. 제36회 사법시험 합격                  

1995. 제26기 사법연수원 수료                  

1997.   서울지법 판사

2000.2.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

2001.2. 대전지법 판사

2004.2. 서울중앙지법 판사 .

2008.2. 서울고법 판사 겸 법원행정처 민사정책심의관

2009.2.법원행정처 민사심의관 겸임

2012.2.창원지법 부장판사

2012.2.대법원 재판연구관

2015.2.수원지법 부장판사

2017.2.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처 : http://www.onju.com/onju/service/Writer/SER_W03_1.aspx?mid=10267412

관련기사

우병우 영장심사 맡는 오민석 부장판사는 누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201048001&code=940301


[특검수사] 21일 오전 10시 30분 우병우 구속영장 실질심사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220000338


전국 행정재판 담당 판사들 모여 최초 ‘행정법관 포럼’

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161107121017596898901_12


대법원,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 법관 966명 인사 내역 명단

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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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김지영 프로필 및 출연작-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본명 김효식(金孝植)

출생 1938년 9월 25일, 함경북도 청진시

사망 2017년 2월 19일 (향년 79세)

가족 4남매

학력 인천여자고등학교

데뷔 1960년 영화 '상속자'

종교  무종교 → 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막달레나)


출연작(TV)

1989년 MBC 월화드라마 《나비야 청산 가자》

1990년 MBC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1990년 KBS1 일일드라마 《울밑에 선 봉선화》... 끝순 엄마 역

1992년 KBS1 특집드라마 《너의 이름은 효자》

1994년 KBS2 수목드라마 《무당》

1994년 SBS 월화드라마 《작별》

1994년 KBS2 수목드라마 《숨은 그림 찾기》

1995년 SBS 월화드라마 《서울 야상곡》

1995년 KBS2 일요아침드라마 《개성시대》... 할머니 역

1996년 MBC 아침드라마 《달콤한 인생》... 강씨 역

1996년 KBS2 월화드라마 《신고합니다》 ... 군단장 할머니 역

1996년 KBS2 수목드라마 《머나먼 나라》

1997년 KBS2 주말연속극 《파랑새는 있다》... 앤디 김 모친 역

1998년 MBC 수목드라마 《대왕의 길》... 최상궁 역

1998년 KBS1 TV소설 《은아의 뜰》

1998년 MBC 수목드라마 《육남매》

1998년 MBC 수목드라마 《해바라기》... 재봉 모 역

1999년 SBS 드라마스페셜 《파도 위의 집》... 소란 모 역

1999년 KBS1 일일연속극 《사람의 집》

2001년 MBC 수목드라마 《네자매 이야기》... 평양댁 역

2001년 KBS2 월화드라마 《쿨》

2001년 SBS 청춘시트콤 《여고시절》

2002년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박순천 의원 역

2002년 SBS 일일드라마 《소문난 여자》... 만구 모 역

2002년 KBS1 TV소설 《인생화보》... 심씨 역

2002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모자사기단 운수 좋은 날》 ... 호자 역

2003년 MBC 수목드라마 《눈사람》... 필승 모 역

2003년 MBC 수목드라마 《나는 달린다》

2004년 MBC 단막극 《MBC 베스트극장 - 안녕, 클레멘타인》 ... 이성복 모 역

2004년 KBS2 수목드라마 《풀하우스》... 영재의 조모 역

2004년 MBC 수목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 능옥 역

2004년 SBS 주말극장 《토지》... 김 서방댁 역

2005년 SBS 특집드라마 《핑구어리》

2005년 KBS2 수목드라마 《열여덟 스물아홉》... 떡볶이집 할머니 역

2005년 SBS 금요드라마 《사랑한다 웬수야》... 장희분 역

2005년 KBS2 수목드라마 《장밋빛 인생》... 미스 봉 역

2006년 MBC 일일연속극 《얼마나 좋길래》... 선주 고모 역

2007년 SBS 주말극장 《황금신부》... 맹만덕 역

2007년 KBS2 단막극 《드라마시티 - 틈》 ... 양순남 역

2007년 KBS1 전원드라마 《산 너머 남촌에는》... 양산댁 역

2008년 MBC 주말연속극 《내 인생의 황금기》... 황 조모 역

2008년 SBS 월화드라마 《타짜》... 영민 조모 역

2008년 KBS2 월화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윤영 모 역

2008년 SBS 드라마스페셜 《스타의 연인》... 김옥자 역

2010년 SBS 월화드라마 《별을 따다줘》... 최은말 역

2010년 SBS 월화드라마 《커피하우스》... 홍복례 역

2010년 SBS 드라마스페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삼신 할머니 역 (우정출연)

2011년 SBS 월화드라마 《마이더스》... 우금지 역

2011년 MBC 주말연속극 《반짝반짝 빛나는》... 종로백곰(고은혜) 역

2011년 KBS2 수목드라마 《로맨스 타운》... 순금 조모 역

2011년 KBS2 특집드라마 《노리코, 서울에 가다》... 삼월 역

2011년 KBS2 TV소설 《복희 누나》... 최간난 역

2012년 MBC 일일연속극 《그대 없인 못살아》 ... 강월아 역

2013년 JTBC 일일연속극 《가시꽃》 ... 파주댁 역

2013년 MBC 주말연속극 《금 나와라, 뚝딱!》 ... 몽희 외할머니 역

2013년 SBS 일일연속극 《잘 키운 딸 하나》 ... 라공 외할머니(변종순) 역

2014년 MBC 월화드라마 《트라이앵글》 ... 오정희의 할머니 역

2015년 KBS2 수목드라마 《고맙다, 아들아》 ... 임 여사 역

2015 tvN 월화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2》 ... 이점이 역

2015 MBC 수목드라마 《앵그리맘》 ... 조강자의 시어머니 역

2015 MBC 주말연속극 《여자를 울려》 ... 복례 역

2016년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 … 조동보 역


출연작(영화)

1965년 《마포사는 황부자》

1967년 《가고파》

1967년 《보은의 기적》

1967년 《상감마마 미워요》

1967년 《엘레지의 여왕》

1968년 《삼현육각》

1968년 《못다한 사랑》

1968년 《자주댕기》

1968년 《어머니는 강하다》

1968년 《화산댁》

1968년 《잘돼갑니다》

1968년 《남》

1968년 《유성의 검》

1968년 《아리랑》

1968년 《순애보》

1968년 《맨발의 영광》

1969년 《미워도 다시 한 번》

1969년 《지하실의 7인》

1969년 《차라리 남이라면》

1969년 《개구장이 도련님》

1969년 《눈나리는 밤》

1969년 《모르는 여인의 편지》

ㅇㅇ

1969년 《고원》

1969년 《주차장》

1969년 《내실》

1969년 《봄봄》

1969년 《이조 여인 잔혹사》

1969년 《겨울 부인》

1969년 《팔도 사나이》

1969년 《서울야화》

1970년 《복수의 마검》

1970년 《5인의 왼손잡이》

1970년 《유정검화》

1970년 《수호지》

1970년 《아무도 모르게》

1971년 《항구의 왼손잽이》

1971년 《비에 젖은 두 남매》

1971년 《대감신랑》

1971년 《괴짜신부》

1971년 《다섯개의 단검》

1971년 《아름다운 팔도강산》

1971년 《여인도》

1971년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1971년 《처복》

1971년 《지금은 남이지만》

1972년 《아름다운 팔도강산》

1972년 《잘 살아다오 내 딸들아》

1972년 《정과 정 사이에》

1972년 《화분》

1972년 《무녀도》

1972년 《섬개구리 만세》

1973년 《비바리》

1973년 《엄마결혼식》

1973년 《방년 18세》

1973년 《여대생 또순이》

1973년 《산녀》

1973년 《별난청춘》

1973년 《증언》

1974년 《아들 3형제》

1974년 《아내들의 행진》

1974년 《연화》

1974년 《명동에서 첫사랑을》

1974년 《토지》

1974년 《울지 않으리》

1974년 《낙인》

1975년 《망나니》

1975년 《비녀》

1975년 《마지막 포옹》

1975년 《애종》

1975년 《형사 배삼룡》

1975년 《태양의 분노》

1975년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년 《욕망》

1976년 《청춘을 이야기 합시다》

1976년 《보르네오에서 돌아온 덕팔이》

1976년 《여자의 성》

1976년 《어머니》

1976년 《아내》

1978년 《진짜 진짜 좋아해》

1978년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1979년 《정조》

1979년 《골목대장》

1979년 《을화》

1980년 《짝코》

1980년 《병태와 영자 2》

1980년 《월녀의 한》

1980년 《팔불출》

1980년 《짝코》

1980년 《그 여자 사람잡네》

1980년 《외인들》

1980년 《복부인》

1980년 《속 병태와 영자》

1981년 《아빠 안녕》

1981년 《집을 나온 여인》

1981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1년 《오늘밤은 참으세요》

1981년 《두 아들》

1981년 《미워도 다시 한번 82 제2부》

1981년 《초대받은 사람들》

1981년 《어둠의 자식들》- 어머니 역

1982년 《82 바보들의 청춘》

1982년 《타인의 둥지》

1982년 《내가 사랑했다》

1982년 《화순이》

1982년 《관 속의 드라큐라》

1982년 《여자와 비》

1982년 《무녀의 밤》

1982년 《날마다 허물벗는 꽃뱀》

1982년 《낮은데로 임하소서》- 장모 역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

1982년 《버려진 청춘》

1982년 《어둠의 딸들》

1982년 《최인호의 야색》

1982년 《오염된 자식들》

1983년 《겨울 여자 2》

1983년 《안개 마을》

1983년 《외박》

1983년 《땜장이 아내》

1983년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

1983년 《여자가 더 좋아》

1983년 《마계의 딸》

1983년 《참새와 허수아비》

1983년 《대학 들개》

1983년 《속 사랑하는 사람아》

1983년 《얼굴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1983년 《바보 선언》

1983년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3년 《대학신입생 오달자의 봄》

1984년 《장대를 잡은 여자》

1984년 《그 여름의 마지막 날》

1984년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

1984년 《밤마다 천국》

1984년 《수렁에서 건진 내 딸》

1984년 《잊혀진 계절》

1984년 《야망과 도전》

1984년 《젊은 시계탑》

1984년 《지금 이대로가 좋아》

1984년 《돌아오시는 날》

1985년 《차라리 불덩이가 되리》

1985년 《그것은 밤에 이뤄줬다》

1985년 《여왕벌》

1985년 《화녀촌》

1985년 《이별없는 아침》

1985년 《달빛타기》

1985년 《고래 사냥 2》

1985년 《방황하는 별들》- 유인자 역

1985년 《여자의 대지에 비를 내려라》

1985년 《부나비는 황혼이 슬프다》

1985년 《물목》

1986년 《길소뜸》- 석철 아내 역

1986년 《심형래의 탐정 큐》

1986년 《뛰는 자 나는 자》

1986년 《황진이》

1987년 《레테의 연가》

1987년 《달래내 보슬이》

1987년 《도화》

1987년 《못다 부른 노래님》

1987년 《감자》- 왕 서방 역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년 《위기의 여자》

1987년 《아다다》- 사모 역

1988년 《둥지속의 철새》

1988년 《사방지》- 사대부 마님 역

1988년 《목밀녀》

1988년 《산배암》

1988년 《이장호의 외인구단 2》- 엄지 모 역

1988년 《당신은 안개꽃》- 셋집 주인 역

1988년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 묘지기 역

1988년 《가루지기》

1989년 《달콤한 신부들》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창수 부 역

1989년 《잠자리에 들 시간》- 의상실 주인 역

1989년 《추억의 이름으로》- 어머니 역

1989년 《우담바라》

1989년 《신사동 제비》- 장모 역

1989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주인 여자 역

1990년 《우묵배미의 사랑》- 오바로꾸 역

1990년 《너는 나의 황홀한 지옥》- 부인 역

1990년 《타악기의 계절》- 안씨 역

1990년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진희 모 역

1990년 《어느 모델의 사랑》

1990년 《남부군》- 마을 아낙 역

1991년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3년 《비 오는 날의 수채화 2》- 노파 역

1997년 《로켓트는 발사됐다》- 술집 여자 1 역

1998년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지원 역

1999년 《만날 때까지》- 박 부인 역

2000년 《행복한 장의사》- 연이 할매 역

2001년 《파이란》- 세탁소 아줌마 역

2001년 《킬러들의 수다》- 의뢰 할머니 역

2002년 《라이터를 켜라》- 봉구 모 역

2003년 《...ing》- 아줌마 역

2004년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할머니 역

2004년 《달마야, 서울 가자》- 노 보살 역

2004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반야가인 역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 만택 어머니 역

2005년 《파랑주의보》- 민박집 주인 역 (특별출연)

2006년 《마파도 2》- 진안댁 역

2006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박 할머니 역

2007년 《아들》- 강식 모 역

2007년 《열한번째 엄마》- 백중 모 역

2007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할머니 역 (특별출연)

2009년 《국가대표》- 봉구 할머니 역

2009년 《해운대》- 금련 역

2010년 《무적자》- 이모 역

2011년 《도가니》- 인호 모 역

2011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할머니 역

2013년 《고령화가족》 - 상근댁 역 (특별출연)

2013년 《결혼전야》 - 대복 모 역 (특별출연)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C%A7%80%EC%98%81(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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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의원 프로필 및 손학규의 타이밍



이름   손학규 (孫鶴圭, Sohn Hak KyuSon Hack Qu[1])

출생일 1947년 11월 22일

출생지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

학력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종교   개신교(장로교)

가족   이윤영, 슬하 2녀

소속   정당 국민의당[2]

선수   4(14, 15, 16, 18)

경력   서강대학교 교수

       민주자유당 대변인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민주당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선거이력


손학규의 타이밍


2006년 100일 대장정 마지막날 -> 북한 1차 핵실험

2007년 한나라당 탈당 -> 한미TFA타결

2010년 첫 장외투쟁 시작 -> 북한 연평도 포격

2016년 정계복귀 -> 최순실 국정농단



.

.

.


그리고 오늘

2017년 2월 17일 국민의당 입당 ->이재용 삼성부회장 구속


출처 : https://namu.wiki/w/%EC%86%90%ED%95%99%EA%B7%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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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장 권선택 시장 프로필 및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민선6기, 대전광역시의 제11대 시장이다. 

대한민국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목달리(現 대전광역시 중구 목달동)에서 1955년 12월 1일에 태어났다. 1974년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7년 23세에 전국 최연소로 제20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충청남도청 기획관(1990년),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1991년), 내무부 지역경제심의관(1997년), 대전광역시 정무부시장(당시 2급 1999년), 청와대 인사비서관(2003년)을 거치며 행정관료로 명성을 쌓았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대전광역시 중구에 출마해 한나라당의 5선 중진이자 고교선배인 하나회 출신 강창희를 꺾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06년에 대전시장 출마를 희망했으나 염홍철 전략공천이 유력시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탈당, 국민중심당 창당에 합류하고 그 후신인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18대 총선에 무난하게 당선되었지만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의 지지기반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잠식당하며 낙선되었고 이후로는 자유선진당이 최종적으로 한나라당으로 통합되자 자유선진당을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2014년에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대전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선거 중반까지는 여론조사에 밀렸기에 박성효가 평판이 안 좋았음에도 낙선될것으로 예측되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새누리당의 박성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사전선거운동 혐의)으로 기소되어 2015년 2월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시장선거 전 지속했던 포럼활동을 법원에서는 유사선거행위로 간주하였다. 이에 권선택은 항소했으나 그해 7월 20일에 대전고등법원에서 1심과 동일한 유죄 판결을 내려 당선무효가 유지되었다. 이에 권선택 시장은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지만 사실상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는데.....

2016년 8월 26일 대법원에서 상고 일부를 인정해 파기환송했다! 요약하자면 사전 선거운동의 원인이 되었던 포럼 활동이 선거로부터 상당 기간 앞선 2012년 11월부터였던데다 이 때 대전시장 선거 지지를 독려했다는 것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따라서 2심 판결을 다시 받게 되었으며 만약 대법원의 판단대로 사전 선거운동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당선무효를 면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7년 2월 16일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또 다시 실형을 선고 받아 당선무효 위기에 놓였다. 권 시장이 재상고하면 시장직은 어느 정도까지 더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재상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길어지고 결국 당선무효형이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시장 재선거는 치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1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


한편 2015년 10월 29일 권선택측의 선거팀장이 붙잡혀 집행유예형이 선고되었고, 이 사람을 숨겨준 이들도 재판에 넘겨져 실형 혹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선거이력


출처 : https://namu.wiki/w/%EA%B6%8C%EC%84%A0%ED%83%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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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도지사 홍준표 프로필


출생일 1954년 12월 05일, 경남 창녕군

소속 경상남도 도지사, 자유한국당

직업 광역단체장, 전직 국회의원, 전직 검사

성별 남성

학력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4선 국회의원이자 현재는 경상남도 도지사에 재임 중이다. 검사 시절에는 그야말로 성역이 없이, 검찰 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 등을 줄줄이 수사했던, 당시 검찰에 몇 안 되었던 소신 검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1954년 12월 5일 창녕군에서 출생. 영남고등학교를 거쳐 1973~1977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땡전 한푼 없던 학생 시절에 고려대학교 구내의 서울신탁은행에서 일하던 여인에게 반하여, 전전반측 잠못 이루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그녀와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 불문곡직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같이 살자"는 말로 프로포즈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가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대학 시절 한때 학생운동에 전념했고,사법시험에도 몇 번 응시하였다. 사법시험에 떨어진 어느 겨울밤에는, 아버지가 있던 울산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던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의 경비원이었던 아버지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불공평한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법시험에는 계속 떨어졌고, 그래서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다. 당시 워낙 말랐기 때문에, 체중미달로 14개월의 방위병 복무를 명 받았다. 복무장소는 처가가 있던 전라북도 부안의 해안초소였다.


그렇게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하였다.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스물아홉살 때인 1982년에 제24회 사법시험에 드디어 합격하였다.

법조인시절

홍준표 본인과 상대방의 말이 크게 엇갈리는 부분이 많으니 이 문서도 참조만 할것.


1984년에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청주지검 검사시보로 부임하였으며, 부산지검, 광주지검, 서울지검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였다. 검사 부임 초기 1년간 2000건의 사건을 해결하였다.


1987년 6월 10일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를 거쳐, 1988년 8월 26일에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 부임하였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에 재직 중이던 1988년 11월 23일에는 당시 치안본부 정보2과 분실장이던 서정희(徐政熙)를 구속기소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어 전두환의 외조카인 기업인 김영도가 다른 기업인들과 짜고 구속된 모 기업인에게 석방시킨다는 조건으로 뇌물수수를 받은 사실도 적발하여 구속 기소했다. 


1992년 8월 4일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부임하였다. 그 후 파키스탄인 폭력조직 주비파 두목 임란 사자드외 13명을 적발, 체포하여 그해 9월 22일 임란 사자드 외 3명에게 사형과 나머지 10명에게는 징역 15년형을 구형하였다. 또 다른 파키스탄인 조직폭력배인 비키파의 사자르 아크바르 알리(당시 19세) 등 10여 명에게는 징역 15년형을 구형하였다. 


1992년 10월 21일에는 보험금 7억 원을 노리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지하 나이트클럽에 방화를 한 폭력조직 목포파 부두목 유희호(兪熺昊)와 행동대장 홍동표(洪動杓) 외 6명을 방화혐의로 추적하여 체포, 구속하였다. 1993년 5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주임검사로 보직되었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 중이던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천기호(千基鎬) 경찰청 치안감, 그리고 대전지방검찰청 모 검사 등의 비리, 뇌물수수혐의를 입증하고, 이들을 모두 구속 기소하였다. 당시에도 협박과 압력을 많이 받았으나, 이를 모두 무시하고 그대로 처리하였다.


심지어는 상사인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돈을 받고 슬롯머신 업자에 대한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였다. 그 후 이건개 전 의원은 뇌물수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93년 5월에는 슬롯머신 사건과 동시에 정덕진의 빠칭코 사건의 수사를 전담하기도 했다. 5월 5일부터는 빠칭코의 대부인 정덕진을 구속수사하고 전담을 맡았다. 이들을 뒷골목 깡패가 아닌 '초보적 마피아'로 규정하고 치밀하게 수사하였다. 



정덕진을 수사하면서 고위층과 과거의 상관인 변호사들로부터 "다칠 수 있다"는 질책과 함께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전화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정덕진을 구속수사하여 빠칭코 관련자들을 색출, 적발하였다. 정덕진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던 당시 그는 이탈리아 사정검사의 대부 피에트로 검사의 사정활동 기사를 자신의 사무실에 항상 펼쳐두었다. 이때 성역없는 수사로 화제가 되었으나, 검찰과 법무부에서는 한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슬롯머신 수사의 절정은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을 구속 기소한 것이었다. 슬롯머신 업자에게서 5억 원의 돈을 받은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박철언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법원은 박철언의 결백하다는 주장을 외면했다. 결국 박철언은 국회의원 뱃지를 반납하고 1년 4개월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이러한 스토리는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작품소재가 되었기에, 그 후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사실, 홍준표 외에도 은진수 검사가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은진수는 시간이 흘러 뇌물을 받고 구속된다.


그러다가 1994년에는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안기부 국제범죄수사지도관이 되었다. 이후 홍준표는 1994년 11월부터 1995년 9월까지 안기부로 파견을 나갔다.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된 것이었다.

1995년 9월 21일에는 법무부 특수법령과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러다가 10월 2일 사직서를 제출하였고, 그 사직서는 10월 4일 수리되었다.검찰을 나오자마자 바로 변호사를 개업하고 방송 출연 등에 섭외되었다.


정치활동

변호사 개업 후에 슬롯머신 사건 당시 처벌 받았던 조폭들에게서 가족의 생사를 두고 지속적인 협박을 받았다. 결국 정계 입문을 다짐하게 되었고, 김영삼 대통령의 추천으로 신한국당에 입당함으로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원래 꽤 개혁적인 인사로 분류되어 꼬마민주당이나 국민회의 입당 가능성이 점쳐졌고, 본인도 꼬마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했으나, 이기택 총재가 꾸물거리는 사이에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과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입당을 제의하면서 신한국당에 입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뷰 그 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 선거구로 현역 국회의원인 조순환을 꺾고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젊은 나이 덕분인지 주로 소장파 역할을 맡았으며, 노동 최저 연령 상향을 발의, 통과시키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치러진 보궐선거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을에 출마, 당선하여 국회에 복귀했다. 그리고 같은 지역구로 제17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4선 의원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장의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막판에 오세훈에게 밀려서 석패했다. 2008년에는 태권도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2011년 7월에는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나섰는데, 뚜렷한 조직세 없이 대표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4만 1666표를 얻었으며, 2위는 유승민 후보(3만 2157표), 3위는 나경원 후보 (2만 9722표), 4위는 원희룡 후보(2만 9086표), 5위는 남경필 후보(1만 4896표)가 차지했다. 대표로 선출된 후 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 맞서서 한나라당의 지지세를 조금씩 회복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지지율에서 민주당에 밀리고 다음해 총선 전망도 어두워지자 결국 승부수를 던지고 말았다. 2011년 12월에 “현역의원 전원의 불출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자기희생적이고 과감한 인재영입을 추진하겠다.” “현역의원과 당협위원장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선수에 상관없이 의정활동과 조직활동으로 전원 재심사를 받도록 하겠다.” “재심사위원회는 전원 당외 인사로 구성해 공천심사위에 가기 전에 2단계로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재창당 쇄신안을 내놓은 것. 그러한 쇄신안이 당내 모든 계파로부터 거부 당하자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동대문을에 출마하여 국회의원 연임을 노렸으나, 민병두 후보에게 밀려 석패하고 말았다. 이명박의 실정에 분노한 서울 민심 때문에 당초에 선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지지율이 밀리는 양상을 보였고, 그것이 당연히 패배의 결과로 이어진 것. 어쨌든 앵그리 버드를 패러디하는 동영상도 찍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총선에서 패배한 후 몇 달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가, 김두관 경남지사가 사퇴하여 경상남도 도지사가 공석이 되자, 2012년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경상남도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거기서 야권의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재기했다. 이후 2014년 6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당선되어 현재까지 2선 도지사로 연임하는 중이다.


이러한 여러 이력 덕분에 한때는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하단 문단에 있는 갖가지 논란으로 인해 2015년 이후 여론에서 대하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며, 대권은 사실상 멀어졌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역 여론도 좋지 않은 편이라 사실상 탄핵에 상응하는 주민소환까지 고려되고 있을 정도다. 물론 탄핵은 실제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민소환에 필요한 총 유권자수 대비 10%의 서명을 받아 2015.11월 선관위에 제출된 상태이다. 다만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이기에, 실제 주민소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중복서명 검사 등의 필요한 절차들을 밟기 어려운 상황으로, 총선이 끝난뒤에 명단 검토 및 주민소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홍준표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의 주도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게 심의를 요청한 상태이다. 주민소환은 경남 총 유권자의 10%인 27만명을 넘으면 홍준표의 소명을 받아 실시가 되는데 현재 신청 서명한 사람이 35만명이기 때문에 유력하다. 선관위에 의해 투표 공고가 나오면 투표일까지 직위는 중단된다. 이후 투표가 진행되면 총 유권자의 1/3이 투표한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면 직무가 해제된다. 만약, 해제가 되면 내년 4월 재보궐로 새로운 도지사를 뽑게 된다.


1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현직 자치단체장(지방관)이라는 신분 때문에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다. 이에 홍준표는 항소하기로 했다.


선거이력  


출처 : https://namu.wiki/w/%ED%99%8D%EC%A4%80%ED%9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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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손혜원 의원 프로필


출생일 음력 1955년 01월 23일

소속 더불어민주당

직업 국회의원, 컨설턴트

성별 여성

학력 홍익대학교 대학원 공예도안과 졸업(미술학석사)

학력

- 홍익대학교 대학원 공예도안과 졸업(미술학석사)

- 홍익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

-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경력

2016.05 제20대 국회의원

2014.11 한국나전칠기박물관 관장

2015.12 더불어민주당 홍보위원장

2005.03 ~ 2008.02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 서울디자인센터 이사

1986.11 ~ 2016.05 크로스포인트 대표

수상

2003 홍콩디자인협회 아시아 디자인상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6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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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배우 유퉁 프로필 결혼 이력


본명 유순

출생 1957년 5월 19일, 대구광역시

신체 180cm, 90kg

학력 대구예술대학교

직업 배우, 사업가

소속사 좋은 친구들

데뷔 1987년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형제자매 2남 2녀 중 차남

자녀 아들 2명, 딸 1명(공식적으로 확인된것만이다)

▲▲▲▲발렌타인데이 게임50% 캐쉬백!!▲▲▲

출연작(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 2 (1988년)

그들도 우리처럼 (1990년)

맨발에서 벤츠까지 (1991년)

머저리와 도둑놈 (1992년)

키스도 못하는 남자 (1994년)

도둑과 시인 (1995년)

3인조

인연

블랙잭

꽃을 든 남자

미스터 콘돔 (1997년)

죽이는 이야기

짱이상 (1998년)

자귀모 (1999년)

조폭 마누라 2 - 돌아온 전설 (2003년)


출연작(드라마)

또래와 뚜리

까치며느리

적색지대

여명의 눈동자 - 일본군 장교 역.

한 지붕 세 가족

전원일기

로망스

드라마게임 - 비오는 날의 방문객


트리비아

무명시절이었던 1984년 에 그는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사직구장에 갔다가 음주와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응원단장을 자청했다고 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근데 사직구장은 1985년 10월에 완공됐다.년도에 문제가 없다면 구덕 야구장일 것이다. 사실상 kbo최초의 응원단장


이후 이 사설 응원단장 문화는 한국 프로야구의 구단 전속 응원단장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연예계 마초맨으로 유명한데 유퉁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총 2번 입건되었다. 1997년도에 차안에서 2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자신의 운전사와 함께 입건되었고, 2013년에도 같은 혐의(대마초)로 구속됐다고(...) 흑역사

2013년 6월 27일에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추징금 1만4000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고 한다..


유퉁은 열아홉에 첫 결혼을 했다고 한다. 거기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 벌써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첫 아내와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며 3번 결혼하였다.


네번째 결혼은 장안의 화제였던 비구니 혜선스님과의 결혼인데 그는 "네가 파계를 하고 나한테 오면, 내 너에게 진정한 해탈의 열반을 시전해주마" 라고 설교를 했다고 한다. 결혼 이후에는 불교방송 '108가요' 등 여러 프로그램(주로 불교관련)출연했다.

다섯번째는 스무살 연하의 어린 아가씨와 3년간 동거하다시피하다 한 결혼이었는데, 이 여인이랑 성기구 광고등을 이용해 제법 자산을 불린것으로 안다. 그때도 온갖 여성지에 도배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떠벌렸다. 그리고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섯번째는 29살 연하몽골인 아내와 하였다


유퉁의 5번째 아내이자 몽골인 아내 뭉크자르갈은 33살 연하이며 장모가 12살 연하이다. 유퉁이 1957년생이고 아내는 1990년생인데, 그에 말에 따르면 “우리처럼 영혼의 사랑을 하면 나이가 안 보인다" 고 한다. 하지만 결혼식 무산으로 흑역사화되었다(...)


자세한 사항은http://fishinglove.tistory.com/748

국밥집 사장님으로 유명하다...하루 매출이 1,700만원 이라고 한다(...)그래서 연예계 활동은 가끔 부업 수준으로 나오는 정도로 이 국밥집 장사에 더 집중한다. 2000년 초중반에 국밥집 운영에 대한 책자를 여럿 썼는데 책자에서 대마초로 인해 잡혀들어간 걸 비난하며 나라가 담배나 술은 넘어가면서 대마초를 막는 걸 엄청 비난하기도 했다.


1박 2일 1기 대도시 특집에서 강호동이 이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C%A0%ED%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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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김진 프로필(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생일 1959년 11월 01일, 강원 원주시

직업 전직 기자

성별 남성

신체 키 168cm, 몸무게 69kg

학력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학 석사 졸업

사이트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학력

~ 2007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학 석사 졸업

~ 1985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경력

2006.07 ~ 2016.11 중앙일보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2004.01 중앙일보 정치전문 기자

2003.01 중앙일보 국제부 차장

2000.01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

1998.08 중앙일보 정치담당 논설위원

1997.12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

1987.12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1986.11 중앙일보 편집국 편집부 기자

1984.04 한국일보 코리아타임스 기자


수상

2014.10 제17회 효령상 언론부문

2011 제20회 대한언론상 논설논평부문

2010 제6회 참언론인대상 칼럼부문

1992 한국기자협회 기자상

프로필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1111502



논설위원 및 패널로서의 활동(논란)

중앙일보에 기명칼럼 '김진의 시시각각'을 연재했다. KBS 제1라디오 공감토론(구 열린토론)과 MBC 100분 토론 등에도 자주 출연했다. 



김연아에게 지성을 쌓으라고 '충고'해 논란이 되기도 했고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 논설로 화제가 되었다. 연평도 포격 사태때는 3일만 주면 북한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관련기사 : http://news.joins.com/article/4038248


2012년 12월 11일에는 MBC 백분토론 578회에 출연하여 객관적으로 사실이 아닌 전제를 사실인 양 인용하는 논법으로 주장을 개진하다가 하필이면 그 전제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는 패널로 인해 그 모순점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2013년 5월 20일에는 '아베, 마루타의 복수를 잊었나'라는 칼럼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를 천벌이라고 표현해 일본의 반발을 불렀다.


2016년 현재는 JTBC 뉴스현장에서 월요일과 금요일, 정치현장 코너의 패널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평은 상당히 좋지 않다. 어느 정도냐면 이 분이 등장하면 과장 섞어서 온에어 댓글란에 욕이 주렁주렁 달리고, 표현이 강한 날은 포털사이트 등에서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는다. 


2016년 11월 8일 MBC 100분 토론 743회 '혼돈의 대한민국, 해법은?'에 패널로 출연하여 최순실 사태로 지금까지 쌓아온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 하락은 가장 큰 손실이라고 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해법 제안과 야당의 제안 모두가 헌법에 위배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노태우 대통령 6.29 선언같은 결연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법대로 처벌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서면 검찰조사가 아닌 실질적인 대면 조사를 받고, 남은 대통령임기 1년 3개월동안 서면 정치가 아닌 정상적인 행정을 하겠다는 대국민 사죄 성명을 내고 남은 임기동안 대한민국의 위기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이 난국의 해법으로 제안했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의 범법행위는 역대 정권 모두가 관행으로 해오던 부정행위이고 박근혜 정부가 부정하다고 해서 야당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님을 경고했다. 김대중 정권의 4 대 부정, 즉 핵무기계발 자금 대북지원 4억5천만 달러, 국정원 민간인 1천명 불법도청, 홍일-홍업-홍걸 3 아들중 2명 실형, 김대중 전대통령 전비서실장 박지원 현국민의당 원내대표 호텔사우나 1억 뇌물 수수 등의 과거를 거울삼아 민주당은 자중하라고 경고했다. 


이철희-김진 격한 설전https://www.youtube.com/watch?v=AzFlMqA-Fgc


더불어 시위중에 물대포를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진 백남기 농민이 밧줄을 걸어 경찰버스 전복을 하려는 동영상을 모든 언론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방송에 내보내지 않은 것은 비겁하고 정의롭지 못한 언론들의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법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은 경찰과 군인들을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만큼 이런식의 주장은 대다수의 시청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또다른 비판을 받게되는 논란의 여지만 남겼다.


2016년 11월 18일 JTBC 뉴스현장 출연에서 야당은 시위대 끌고가서 청와대 담 넘어야된다는 발언을 했다. 또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와서 시위하라고 하였다. 앵커가 "그럼 내일 나갈거냐"라고 묻자 "나는 안나간다. 언론인으로서 할일을 해야한다. 나는 아스팔트 시위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촛불집회 100만 보도에 대해서는 "경찰은 26만이라는데 언론이 100만이라 거짓을 보도하느냐"며 언론이 잘못한다고 발언을 하여 시청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2016년 11월 TV조선 "최희준의 왜?"에 패널로 등장을 하고 있다. 특유의 강성적인 발언은 여전하지만, 단독 패널이라서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데다가 방송국의 성향이라든가 MC인 최희준과의 호흡이 잘 맞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타 100분 토론이라든가 JTBC 뉴스현장등에서 보여왔던 특유의 정색하는 모습 보다는 환하고 밝은 모습을 자주 선보이고 있다. 이에 시청자들은 '저렇게 밝은 모습은 처음봐서 낯설다.' '물 만난 고기같다(...)' 등의 반응이 엇갈리는 중.

2016년 11월 28일 엄성섭, 유아름의 뉴스를 쏘다에서 前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소개가 된 것으로 보아,중앙일보 논설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JTBC 뉴스현장의 월요일과 금요일 패널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무래도 JTBC에는 당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아무튼 이 사람의 성향 자체는 JTBC의 논조 보다는 TV조선의 논조와 더 잘맞으니 어떻게 보면 시청자들에게나 김진 자신에게나 잘 된일로 봐야하지 않겠나는 반응이 있다. 미디어워치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논설위원직에서 물러난 것이 사실이며 자신의 결정이 아닌 회사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김진의 퇴직은 중앙일보의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비쳐지고 있다. 손석희가 JTBC 보도부문 사장으로 오면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특히 보수진영에서는 이러한 중앙일보를 바라보며 '중앙일보가 좌클릭을 한다'고 표현할 정도이니 더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TV조선 '박종진 라이브쇼'에서 김대중 정권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아무런 근거가 없고 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바 부적절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리고 설령 김대중 정권에서도 실제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고 한들, 그것이 현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옹호할수 있는 근거가 되진 못한다.


2월 15일 자유당자유한국당의 영입 예정이고,대선에 출마한다고 한다.역시나 깜짝 놀랄 후보가 나왔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C%A7%8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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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 프로필 및 관련이슈(검사시절,혼외자)


이름 채동욱 (蔡東旭)

출생일 1959년 1월 2일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1981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 세종고등학교


경력

서울고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

부패방지위원회 법무관리관

대전고검 검사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서울고검 검사장

39대 검찰총장

경력

2013.04 ~ 2013.09 제39대 대검찰청 검찰총장

2012.12 제42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2011.08 ~ 2012.12 대검찰청 차장검사

2009.08 ~ 2011.08 제18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2006.02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2005.07 국가청렴위원회 법무관리관

2005.04 부패방지위원회 법무관리관

2005 ~ 2006.02 부산고등검찰청 검사

2004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지청장

200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장검사

1982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수상

1991 대통령 근정포장

- 황조근정포장


이슈

출범 초기였던 박근혜 정부 내부인사가 아니라,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서 임명된 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그러다보니 취임시 정치권력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팎의 기대가 매우 높았고, 동시에 청와대에서 내심 마뜩잖아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통제할수 없는 인물

2013년 4월 2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이 "한 번 파보라고 했더니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온다."라고 말한 것에서'파도미(파도 파도 미담만)'라는 별명이 유래되었다. 

이때 작게나마 기사화된 일화인데 채동욱은 과거 평검사 시절 난방도 가동되지 않는 냉방에 살았는데,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려 패혈증으로 번지면서 뇌성마비에 걸렸었다. 의사들은 딸이 5년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지만 지극한 보살핌으로 키워 왔는데, 부부 모임 때면 채 총장은 항상 딸을 데리고 나왔다. 모임이 길어져 떼를 쓰며 울게 되면 그때마다 품에서 머리빗을 꺼내 아이의 머리를 빗어주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딸은 그소리를 듣고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의료진이 정연씨가 5년밖에 살 수 없다고 했지만 22년이나 생존하다가 채동욱이 검찰 총장이 된 이후에 죽었다. 채동욱의 자식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 훗날 혼외자 문제가 터지자 이때의 일화가 재조명 되었다.

2013년 4월~ 9월 불과 6개월 밖에 안되는 짧은 재임기간 중 고질적 문제였던 전두환의 미납추징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두환으로부터 미납추징금 완납계획을 받아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도 완납받았다. 이러한 조치는 국내외에 주목을 받으며 매우 좋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원칙대로 밀어붙어 붙이며 수사에 의욕을 보였으나, 2013년 9월 6일 혼외자식 의혹을 조선일보가 제기하였고 법무부 장관 황교안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청와대는 진상규명을 압박했고 결국 사표 제출에 이르게 되었다. 기사 9월 30일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했다.

부하직원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존경을 받았던 사람으로 유명해서 그의 낙마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낙마와 관련해서 당시 야권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연관되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덮기위해 조선일보를 통해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흘려 수사 중이던 검찰 총장을 찍어내려고 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2016년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하였다. 출연 이유를 묻자 아내가 팟캐스트를 좋아해서 아내 따라 왔다.고 말했다. 단촐한 츄리닝 복장으로 들어와서 대담을 나눴다. 한가롭게 백수로 잘 지내신다고.. 5개의 질문과 1개의 발언을 조건으로 걸었는데, 문자 그대로 촌철살인과 팩트폭력이 뭔지 보여줬다. 

먼저 왜 검찰총장에서 물러났느냐는 질문에, 법대로 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검찰수사에 대해서 청와대가 가이드 라인을 내리는지에 대해서 인정했으며, 그 당시 폭풍의 핵이었던 댓글수사에도 가이드 라인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가이드 라인이 뭐였냐는 질문에 법대로 수사하라가 진짜 지시였다고 답했는데, 거기에 왜 시키는 대로 법대로 처리 했는데도 해임당한거냐는 질문에 대해서 '눈치가 없어서...자기만 빼고 법대로 였는데...' 라는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또 왜 검찰이 유독 권력의 말에 쉽게 굴종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인사권이라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말 잘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들으면 물을 먹이니, 검사들이 윗 사람들 눈치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된 거 같다고 답했다.

최재경 신임 민정비서관에 대해서는 매우 유능하고 뛰어난 검사였다라고 평했지만,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 주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우병우에 대한 수사가 잘 풀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덤덤한 태도로 잘 될거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짧고 깔끔하게 답했는데, 끈이 떨어졌으니까.라고.[5] 후배검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는 지금이 국민들이 검찰에 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뚝심있고, 올바른 자세로 수사에 임해주길 바란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했으며, 국민들에게는 정말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더 검찰을 믿어주시라는 말을 남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임수빈 변호사와 함께 물망에 오르고 있다. 네티즌은 이정희가 맡아주는 통쾌함을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경력과 당적으로 인한 자격 미달이다보니 단순히 유능하고 신뢰가는 인물임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얽힌 것도 있어서 이정희만큼 재밌는 구도가 나올거라는 기대 하에 여론은 채동욱이 특검으로 위임되길 바라고 있다. 이와 관련된 진행사항은 특검 참조.

그리고, 2016년 11월 15일, 채동욱은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의가 들어온다면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히 지키면서 철저하게 수사할 겁니다."라면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다만, 채동욱은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특별검사로 추천을 받으려면 변호사 등록부터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언론의 의혹 제기와 혼회자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단 검찰의 수사는 채동욱을 피의자로 수사한 것이 아니며, 채동욱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수사하면서, 혼외자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도 함께 조사해 본 것이다.

일단 혼외자식이 있다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불법은 아니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혼인 이전에 두었거나, 미혼이나 이혼 사별로 배우자가 없는 경우, 동거인과 혼외자를 둔다하도 아무런 불법이 아니며[7] 물론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도[8] 승낙할 때에는 법적은 물론 민사적인 책임도 없다. 해방이전 그리고 해방이후 상당기간 동안 옛풍습 때문에 관습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례가 남아있었고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다만 공무원의 경우 축첩이나 사생아는 해방이후부터 1950~1970년대에도 결격사유로 승진철마다 투서가 자주 날아다닌 사유이긴 하다. 법적으론 중혼이나 축첩은 불법이며 간통이 폐지 되기 전에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을 경우, 간통으로 처벌받을 대상이긴 하나 배우자가 묵인 또는 추인할 경우 혼외로 자식 낳지 말란 법도 없고 혼외자라해서 차별받으라는 법도 없다. 다만 공무원 신분상 이 의혹이 사실이면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혼외자를 둔 것이 죄가 아님에도 혼외자 수사가 이뤄진건 혼외자 여부를 폭로한게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이기 때문이었다. 채동욱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군의 개인정보를 서초구청 국장인 조이제가 무단으로 열람하여 국정원 직원에게 유출했고 이 과정에서 지시나 공모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한것. 결국 유출자와 국정원 직원 1인만 처벌되고, 청와대나 국정원등의 개입여부는 가리지 못 했다.

검찰은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된 명예훼손 사건과 청와대의 개인정보유출 개입 의혹 대해서는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관련자들의 정보조회행위에 대해서 정당한 직무권한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판단했다. 검찰의 이러한 판단은 채동욱 망신주기성 기획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 경과는 먼저 조선일보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가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간통죄 폐지 전이므로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이 불법을 저지른채, 법으로 심판하는 위치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되기 때문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이 보도에 대해 채동욱 당시 총장은 바로 다음날 공식 성명을 내서 반박 발표를 하며 유전자 검사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내놓았고, 또한 조선일보에도 정정 보도 청구 소송까지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로 판단하자는 이야기에 대해, 어른들의 정치 문제로 발생한 문제를 12살 아이에게 전가하여 온국민 시선 집중된 가운데 친부를 확인하는게 과연 옳으냐하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더군다나 임모씨나 12살 채군 입장에선 친부가 누구인지 여부는 개인의 사생활이라 공개해야할 의무도 없으며, 따라서 유전자 감식은 강요할수도 없다. 더구나 12살 어린이는 법정대리인 임모씨가 수락해야 가능한데 현재까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


2013년 법무부는 감찰 결과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은 사실로 볼만한 증거와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2014년 검찰은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며 여러 증거와 진술을 열거했다. .

또한 검찰 관계자는 "친자관계는 유전자검사에 의하지 않고는 100%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으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로 믿은 것을 추측하게 하는 언동, 혈액형 검사 결과와 같이 친자관계를 배제하거나 긍정하는 요소 등 간접사실과 경험칙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산부인과 병원진료 기록, 초등학교 학적부, 유학신청서류 '보호자'란에 손글씨로 채동욱이라고 적혀있다.

- 채 전 총장과 임 여인, 아이가 셋이서 색깔을 맞춰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

- 임 여인과 채 군이 평소 외부에 '아빠가 채동욱 검사'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 임모 여인이 채 전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 내용에 아이 아빠가 채 전 총장이라는 내용이 있다.

- 임씨의 가정부가 채 전 총장의 자필 연하장을 받았다는 정황 근거가 있다.

- 계좌 추적 결과, 채 전 총장이 제3자를 통하여 임씨에게 수천만원을 송금한 적이 있다.

- 임씨와 통화내역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B1%84%EB%8F%99%EC%9A%B1


이렇듯 혼외자 여부가 사실이 아니다 하더라도 임모씨와 채총장이 친밀한 사이인게 드러났다. 임모씨가 채모군의 성을 채씨로 고른건 채총장과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채총장을 존경하는 마음에 한걸로 보인다. 다만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채동욱은 자신이 혼외자에 대한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 엉뚱한 여자가 자기자식이 생부가 채동욱이라고 주장한 꼴이라 사실이 아니라면 임모씨에게도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유전자 검사를 요구해도 실상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채동욱 전 총장이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고, 임모씨가 거부하는 것에 대해 혼외자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측에서는 임모씨와 채총장이 서로 짜고, 임모씨는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기로 약속하고 채동욱 총장더러 강하게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만약 혼외자 의혹이 거짓이라면 단순 소문이라도 공직자로써 물의를 일으킬 내용이기에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임모씨에게 하지말라고 주의를 줬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일회성도 아닌 여러차례에 걸쳐 말했던 임모씨에게 제지하지 않은 점은 의혹을 묵인한 셈이 되어 의혹을 더 커지게 만들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2016년 현재까지도 정확한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는 채동욱 전 총장과 친분이 있는 임모씨가 동의해야 가능한데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게 검찰이나 채총장 모두 양측의 주장을 증명할 길이 없다. 한편, 채동욱의 혼외자를 낳은 내연녀로 알려진 임정순씨는 채동욱과의 관계를 이용해 형사사건을 청탁받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하 검찰수사는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대해서 원출처인 개인정보유출 처벌과 청와대 내부감찰의 적법성을 가리기 위한 수사이지 채 총장 개인에 대한 수사는 아니다. 그러나 언론과 세간의 관심은 혼외자 의혹에만 집중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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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변호사 프로필 (박근혜 대리인 추가)

출생일 1951년 01월 27일, 대구

직업 변호사, 전직 정무직공무원, 전직 판사

성별 남성

학력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1968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5기 수료)

1978년 판사( ~ 2006년)

2006년 9월 헌법재판소 재판관(한나라당 추천으로 국회 선출)

2013년 1월 3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특정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인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되었다.

2013년 2월 13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지 41일만에 사퇴하였다.


학력

-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1977 서울대학교 대학원

~ 1972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경력

- 법무법인 율전 변호사

2006.09 ~ 2012.09 헌법재판소 재판관

2005.11 수원지방법원 법원장

2005.08 서울가정법원 법원장

2005.02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2003.02 서울고등법원 특별6부 부장판사

- 한국법학원 이사

2000 서울고등법원 민사4부 부장판사

2000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우

1998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6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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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흡, 알고보니 경비유용 논란까지?

http://www.vop.co.kr/A00001122735.html

朴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 합류

http://www.fnnews.com/news/201702131618339969

'헌법재판소장 후보 낙마' 이동흡 전 재판관, 대통령 대리인단 합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21315322686844

이동흡,그는 누구?"효순이와미선이 사건.." 화려한 프로필

http://www.iworld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432

주요 판결 및 헌법소원 의견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BBK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이명박 특검법' 헌법소원에 대해 참고인 동행명령제를 제외한 나머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김희옥 재판관과 이동흡 재판관 2명만 법 전체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야간 집회 금지의 헌법 소원에 대하여 "야간옥외집회 금지는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정당한 입법목적 하에 규정된 것"이라며 합헌 의견을 제시했다.

* 2009년 9월 24일, 헌법불합치로 결정된 야간옥외집회금지에 대해 합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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