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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갑근 검사 프로필(고검장, 특별수사팀)


출생일 1964년, 충북

소속 대구고등검찰청 고검장

직업 검사

성별 남성


학력

1982년:청주고등학교

1986년:성균관대학교 법학과 학사

경력

1987년:제29회 사법시험 합격

~ 1990년:제19기 사법연수원

1993년: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

2002년:청주지방검찰청 부부장

2003년: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부장검사

2004년: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제3부장검사

2005년 4월 ~ 2006년 2월:제38대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 지청장

2006년:법무부 범죄예방기획과 과장

2008년: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장

2009년 1월 ~ 2009년 8월:제51대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지청장

2010년:수원지방검찰청 2차장검사

2011년: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 검사

2012년 7월 ~ 2013년 4월:제29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지청장

2013년 4월 ~ 2013년 12월:서울중앙지방검찰청 1차장검사

2013년 12월 ~ 2015년 2월:대검찰청 강력부 부장

2015년 2월 ~ 2015년 12월:대검찰청 반부패부 부장

2015년 12월 ~ :제47대 대구고등검찰청 고검장

2016년 8월~ 2016년 12월: 우병우 이석수 특별 수사팀(결론은 우병우 방패막이, 증거인멸 공범, 최순실 박근혜 부역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관련뉴스

윤갑근 수사팀, 왜 시작부터 의심을 받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2866630


조응천 “윤갑근, 정권의 소방수로 불리는 그런 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81&aid=0002750982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A%B0%91%EA%B7%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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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수경 프로필 활동내역



이름    양수경(梁秀敬)

출생    1965년 9월 23일, 전라남도 순천시

취미    요리, 낙서

특기    고전무용

학력    국악고등학교 - 서울예술대학

데뷔    1988년 

배우자  변두섭(1998~2013)

종교    불교 → 개신교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미모 + 화려한 기교 등은 없지만, 수수한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전영록, 박강성, 김범룡 등 많은 남자 가수들에게서 받은 곡이 꽤 되는데,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 받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강성의 경우는 데뷔 예정곡이었다고.


활동 내역

1988년 1집 《떠나는 마음》으로 데뷔하여 대표 히트곡은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그대는', '외면', '바라볼 수 없는 그대', '사랑은 차가운 유혹', '이별의 끝은 어디 있나요' 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가요톱텐 5주 이상 1위 등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4], 1991년부터는 해외에 진출하여 일본 NHK 아시아 5대 스타상, ABU(아태 방송연맹)가요제 인기 가수상 등 해외에서도 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질 정도로 선전했다.


1998년 1월 데뷔 때부터 함께한 자신의 매니저이자 소속사 대표인 8살 연상 예당컴퍼니의 변대윤(본명 : 변두섭) 회장과 결혼하였다. 기획사의 사모님으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결혼 5년 만에 얻은 아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가끔씩 조용히 취미삼아 음반 활동을 하는 듯 보인다.


2001년에 자신이 직접 기획 제작한 동요 음반을 발매했고, 2004년에는 드라마 OST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의 컴백설이 잠시 돌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 앨범이 남편 회사에서 제작되는 인연으로 녹음 작업에만 참여했을 뿐, 활동을 재개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현재 아들과 함께 하와이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로서의 커리어로만 본다면 그냥 왕년에 꽤 잘 나가던 8090세대 여가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놀라운 인맥들을 자랑한다. 1994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종범, 선동열과 함께 투 앤 원(Two & One)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음반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3년 6월 4일 갑작스럽게 그의 남편인 변두섭 대표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당시 변두섭 대표는 러시아 유전 사업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그 동안 잠시 중단했던 가수 매니지먼트 사업을 다시 시작하던 중이었다. 발인을 치르고 나서 변 대표의 동생과 함께 예당의 경영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가수 활동을 중단한지 17년20년 만인 2016년 7월 부로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로 출연하여 공중파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2부작으로 특별 편성할 정도로 대단했는데, 50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가씨들이나 소화할 법한 포니테일과 이브닝 드레스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동안과 아름다움을 과시했는데, 아무래도 20년 만의 무대여서인지 1부 시작하면서 '사랑은 창밖에 눈물 같아요'를 부르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한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서 감정이 북받쳐 잠시 울컥한 모습을 보여줬다. 첫 번째로 경연에 오른 알리의 경우 남편이 경영하던 소속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몸담았던 연예인이라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는지, 무대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감격스러워 했다. 다음 달인 8월에는 KBS1 콘서트 7080에서 그녀의 단독 컴백쇼를 이례적인 1시간 풀타임 형식으로 편성하여 방영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7년 2월 21일 불타는 청춘에 새친구로서 출연하였다.


정규 앨범

1집 《바라 볼 수 없는 그대》(1988년)

2집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1989년)

3집 《당신은 어디 있나요》(1990년)

4집 《Asian Dream》(1991년)

5집 《한 번 더 생각해 봐요》(1992년)

6집 《잊어야 할 때》(1993년)

7집 《혼자만의 슬픔》(1994년)

8집 《Blue Wedding》(1996년)

9집 《후애》(後愛, (1999년)

출처 : https://namu.wiki/w/%EC%96%91%EC%88%98%EA%B2%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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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판커신 프로필,수상내역,경기스타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름 范可新 | 판커신 | Fan Kexin

생년월일 1993년 9월 19일

국적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172cm

체중 50kg

주종목 500m

개요

왕멍을 잇는 중국의 차세대 여자 단거리 스페셜리스트. 왕멍이 활약하던 시절에는 워낙 왕멍이 절대적인 포스를 뿜어내던 터라 항상 2인자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으나, 왕멍이 중부상을 당하며 사실상 은퇴상태가 된 2014년 소치 올림픽 이후로는 세계 최강의 스프린터이자 중국의 간판 선수로 부상했다. 이를 증명하듯 왕멍이 빠진 2014-15 월드컵 시즌에는 자신이 출전한 4번의 500m 경기에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금메달을 석권했고, 왕멍이 가지고 있던 500m 세계 기록도 갱신했다,


여자 선수로는 170cm가 넘는 상당한 장신인데 이에 반해 몸이 매우 가벼운 편. 거기다 가늘고 긴 팔다리로 쭉쭉 스피드를 내기에 유리한 신체조건을 지녔으며 이미 순간스피드나 최고스피드가 여자 선수들중 거의 최강급이다. 스타트나 초반 가속력은 여자 선수들 중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며 코스를 막는 능력도 노련한 편. 다만 누가 왕멍 후계자 아니랄까봐 이 코스 장악능력에는 후술할 본인의 더티한 플레이 스타일이 한 몫을 한다. 사실상 스프린터 선수에 가깝기 때문에 지구력이 매우 약한 편으로, 당장 1000m로만 올라가더라도 결승전 진출이 버거운 수준까지 떨어진다.

2016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들어 지구력도 상당부분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16-17시즌 들어서는 주종목인 500m에서도 엘리스 크리스티에게 1인자 자리를 내준데다가 1000m에서는 아예 결승진출조차도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하락세가 보이는 중. 1500은 애초에 가망이 없었으므로 논외


더티플레이

국내에서는 이 선수에 대한 여론이 매우 험악한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매우 지저분한 경기 스타일 때문. 

평소 쇼트트랙을 잘 챙겨보지 않아 판커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반칙만은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장면. 바로 소치 올림픽 1000m 결승전에서의 장면으로 마지막 골인 직전에 박승희의 다리를 대놓고 잡으려는 행동을 했었다. 다행히 제대로 잡히지 않아 박승희는 문제 없이 금메달을 따냈으나, 판커신의 이 더티 플레이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이런 추태를 저질렀음에도 박승희가 넘어지지 않았으니 문제 없다는 식으로 실격 없이 넘어간 심판의 판정에도 많은 비난이 있었다.

이 반칙으로 국내에서는 판그랩(grab)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생기기도(...)

소치 올림픽 3000m 계주 당시 2바퀴를 남기고 마지막 주자와 교대를 할 때의 모습이다. 이 때 당시에는 저우양(맨 우측)이 교대 주자가 아님에도 레이스 안으로 들어온 것을 이유로 중국 팀이 실격을 당했으나, 사실 저우양이 아니었더라도 판커신(좌측에서 2번째)이 다음 주자인 리지안루를 밀어주면서 심석희의 몸을 고의적으로 붙잡는 모습이 보인다. 심석희는 교대하는 과정에서 좌우에서 중국 선수들이 몸으로 부대끼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넘어지지 않은 게 대단하다고 할 정도이다.

이외에도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000m에서 박승희의 아웃코스 추월을 막으려고 본인이 무리하게 박승희를 몸으로 들이받다가 본인이 넘어졌음에도, 오히려 박승희가 실격을 당하고 판커신 본인은 어드밴스로 결승전에 진출한 일 때문에 이미 국내 쇼트트랙 팬들로부터는 올림픽 이전부터 말이 많았으며, 2014-15 시즌 3차 월드컵 3000m 계주에서도 마지막에 최민정의 인코스 추월을 팔꿈치만 교묘하게 내밀어 바디 밸런스를 무너뜨리려 하는 등 상대 선수의 추월 과정에서는 거의 습관적으로 몸싸움을 일으키는 선수. 참고로 전 세계 스포츠팬들이 보는 올림픽 무대에서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대놓고 더티 플레이를 했을 정도이니, 평소 월드컵 시즌에는 훨씬 더 대담하고 뻔뻔하게 반칙성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반칙의 빈도 수에 비해 실격은 정말 이상할 정도로 받지 않으니, 더욱 더 대놓고 반칙을 저지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안상미 해설위원의 말로는, 이렇게 경기장 내에서는 수없이 많은 개망나니성(...) 플레이를 하고도, 의외로 한국 선수들과는 경기 외적으로는 관계가 괜찮다고 한다. 반칙의 피해자가 대부분 한국 선수들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정말 아이러니한 부분.


수상내역


동계올림픽

은 2014 소치 1000m


세계선수권

금 2016 서울 500m

금 2015 모스크바 500m

은 2015 모스크바 5000m 계주

금 2014 몬트리올 3000m 계주

금 2013 데브레첸 3000m 계주

금 2012 샹하이 500m

금 2012 샹하이 3000m 계주

금 2011 셰필드 500m

금 2011 셰필드 3000m 계주

동 2014 몬트리올 500m

동 2013 데브레첸 500m


세계 팀선수권

은 2011 바르샤바


세계주니어 선수권

은 2010 타이페이 500m

은 2010 타이페이 3000m 계주


동계 아시안게임

금 2011 아스타나-알마티 3000m 계주

은 2011 아스타나-알마티 500m

출처 : https://namu.wiki/w/%ED%8C%90%EC%BB%A4%EC%8B%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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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석 헌법재판관 프로필(학력,경력, 고향, 관련기사)




대한민국의 헌법재판관이다. 2013년 4월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인 2008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장으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혐의 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후 김용철 변호사가 서기석을 ‘삼성 관리 판사’로 지목해 논란이 일었다. 청문회에서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을 답해달라고 요청받자 자신이 "벙커"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름    서기석 (徐基錫)

출생일  1953년 2월 19일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함양군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현직    헌법재판관


경력

1979 제21회 사법시험 합격

1981 제11기 사법연수원 수료

1981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

1983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85 마산지방법원 충무지원 판사

1987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

1989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1991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4 대법원 재판연구관

1998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1999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부장판사

2000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2000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2002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2004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2005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06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리

2010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2010 청주지방법원장

2010 대전고등법원 청주재판부 부장판사

2012 수원지방법원장

2013 서울중앙지방법원장

2013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출처 : https://namu.wiki/w/%EC%84%9C%EA%B8%B0%EC%84%9D

관련기사


서기석 헌법재판관, '촌철살인' 질문의 정석

http://www.updow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523


서기석 헌법재판관, 대체 누구길래?

http://www.vop.co.kr/A00001125491.html


헌재 강일원 서기석 재판관 "그게 왜 기밀이죠?" 靑 방기선 전 행정관 집중 추궁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70220.9900213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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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장 안상수 프로필 및 선거이력

출생일 1946년 05월 28일, 충남 태안군

소속 자유한국당

직업 국회의원, 전직 광역단체장

성별 남성


학력

1961년 인천서림국민학교 졸업

1964년 인천중학교 졸업

1968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교육학 학사

1995년 트로이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2001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安相洙. 1946년 5월 28일 태안군(당시는 서산군) 출생. 종교는 개신교이다. 

인천 계양구·강화군 갑 지역구에서 제15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었다.[1] 2010년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3선에 도전했지만 낙선하였다.

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5위로 떨어졌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 겸 가계부채특별위원을 맡았다. 

2013년 8월 현재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회 재정경제위원장을 맡고있다.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서구 강화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컷오프되어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새롭게 획정된 인천광역시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선거구에 후보를 등록 하였다. 본 선거에서 31.9%(41,504표)를 획득하며 당선되었다. 해당 선거 당선자 중 최저 득표율당선자가 되었다.


선거이력


경력

동양그룹 종합조정실 사장

동양선물 대표

한나라당 계양구 지구당위원장

제11·12대 인천광역시장

한나라당 인천광역시당 상임고문

대한아마튜어복싱연맹 회장

새누리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

LG유플러스 이사

동양종합금융증권 이사

동양종합금융증권 감사

동양종합금융증권 부사장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3%81%EC%88%98_(1946%EB%85%84_5%EC%9B%94)

       https://namu.wiki/w/%EC%95%88%EC%83%81%EC%88%98(%EC%A0%84%20%EA%B8%B0%EC%97%85%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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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우 변호사 프로필



출생  1945년 1월 10일 (만 72세), 경남 사천시

소속  서일합동법률사무소

가족  아버지 김동리

학력  하버드 로스쿨 수료  외 2건


수상  

2012 국민훈장 무궁화장


경력

2009 제45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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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시인 프로필


본명 김시종 金始鍾

출생 1913년 12월 21일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월성군 경주읍


사망 1995년 6월 17일 (81세)


필명

호(號)는 동리(東里)

아명(兒名)은 김학봉(金鶴鳳)· 김창봉(金昌鳳)· 김창귀(金昌貴)· 김태창(金太昌)


직업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수필가, 대학 교수


소속

前 한국소설가협회 회장

학력

경상북도 경주제일교회 부설보통학교 졸업

경상북도 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 수료

경성 경신고등보통학교 중퇴


명예 박사 학위

중앙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활동기간

1934년 ~ 1995년


장르

시, 소설, 평론, 수필


대표작

《사반의 십자가》,《무녀도》

수상내역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모란장


부모

김임수(부), 허임순(모)


친지

형 2명 누나 2명

자녀 슬하 4남 2녀

장남 김재홍(아동문학가)

차남 김평우(법조인)

4남 김기홍(기업가)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 → 천주교(세례명: 요셉)


개요

본명은 김시종(金始鍾)이고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경상북도 경주에서 아버지 김임수(金任守)와 어머니 허임순(許任順)의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34년 '백로(시)', 1935년 '화랑의 후예', 1936년 '산화'가 연이어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구경(究境)을 탐구하는 문학 정신을 주창하였다. 또한 운명의 문제를 폭넓게 형상화하였고, 해방 후에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작품에 구현하고자 했다.


김동리가 쓴 소설의 주제는 대체로 '운명'이다. 이것은 곧 그가 추구한 '생명이 구경적 형식'을 그는 스스로 '운명'으로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주요작품으로는 《사반의 십자가》,《무녀도》등이 있다.


소설가 손소희(孫素熙)는 그의 2번째 부인이고 소설가 서영은(徐永恩)은 3번째 부인이며 동양철학자 김범부(金凡父)는 첫째 형이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B%8F%99%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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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선 전 청와대 행정관 프로필


나이 : 1965년 출생(53세)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졸업

미주리주립대 경제학과 박사

경력

행정고시 34회 합격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2008년 MB정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

2012년 LA총영사관 부총영사

現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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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사건 전문 박준영 변호사



개요

전남 완도군 노화읍 출신으로, 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했다. 즉, 고졸 출신 변호사. 노무현 이후로 유명 변호사 중에서는 아마 유일무이한 사례일 듯.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착실했으나 가정의 불행으로 고등학교 시절엔 문제아였다고 한다. 가출하고 돈을 벌던 참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만은 따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음을 잡아 가까스로 대학에도 진학한다. 이후 사법시험 준비를 하게되는데, 그 계기가 자기보다 잘난 것도 없던 친구들이 "행세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인생 역전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의 모습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35기를 수료한 후 수원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재심 전문 변호사

그런데 2007년,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국선변호인으로서 변호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리고 변호사 일에 도움이 될까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수원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재심을 이끌어 낸 후 재심 전문 변호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의 장경욱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국정원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재심 사건을 많이 맡게 되면서 수입이 줄어들어 이미 사무실 직원도 다 내보내고, 이후에는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는 사무실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들이 수없이 쌓인다고 한다. 인터뷰 재심이 필요한 힘 없는 돈 없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며 누명을 썼고 그래서 박 변호사에게 줄 돈이 없다. 반면 확정 판결 난 사건을 다시 재판해달라고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여 다른 영리활동과 병행하기란 불가능하다. 변호사들이 자조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 중에 "무죄 변론해 달라는 사건이 자꾸만 들어오는 것은 그 사무실이 망할 조짐"이라는 것이 있는데 보도대로라면 딱 그 격언대로 된 셈이다. 


사실상 파산과 재기

결국 2016년 8월에 사실상 파산을 선언하였다. 이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어 사무실도 정리하였다고. 박 변호사는 고민 끝에 함께하는 박상규 기자에게 요청하여 스토리펀딩을 열었다. 관심 있는 위키러라면 꼭 읽어보자. 한겨레의 정치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서 한 말에 따르면, 1억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의 만기 연장이 안되서 스토리펀딩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눈물. 만기 연장만 되었어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다고.


다행히 스토리펀딩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호응하여 주었다고 한다.‘망한’ 변호사에서 ‘희망’ 변호사로 여담이지만 기사에는 3억원 달성으로 되어 있으나 펀드 마감 기준 567%인 5억 6천만원도 넘어갔다. 대신, 그는 이런 금전적 도움이 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수임료를 받고 하는 변호 수임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수임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거부하고 있다고. 간단히 말해 변호사 수임을 할만한 경제적 사정이 되는 사람들에게 하는 변호 대신, 돈과 권력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법 약자들의 재심을 위한 변호 일만 하겠다는 뜻.


대표사건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이 사건에서 누명을 쓴 청소년들을 변호하여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잡았다는 것을 밝혔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이 사건에서는 경찰이 무고한 청소년을 범인으로 만들고 실제 진범이 잡히자 진범을 풀어주고 무고하게 잡은 청소년을 끝까지 범인으로 만든 정황을 밝히며 이슈화하였다.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결정

이후 존속살해 혐의가 최종 확정되었던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사건의 재심을 이끌어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과 비슷한 사건. 누명을 쓴 3명의 소년을 변호하고 있다. 재심이 개시되었고,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편 결국 1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출처 : https://namu.wiki/w/%EB%B0%95%EC%A4%80%EC%98%81(%EB%B2%95%EC%A1%B0%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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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변호사 프로필 - 박근혜 대리인단 추가


소속

법무법인세광 변호사


학력

- 경북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수료(제7기)

경력

- 수원지검 검사

- 부산지검 검사

- 미국워싱톤 연방검찰청 방문검사 

- 대구지검 검사

- 국무총리직속 인권보호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실장

- 서울지검 검사 (고등검찰관)

-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

- 춘천지검 속초지청장

- 대구지검 공안부장검사

- 대구고검 검사 

- 의정부지검 형사부장검사

-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 의정부시, 고양시 법률고문

- 삼성화재보험 법률고문

-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겸임교수

주요업무분야

출처 : http://www.sk-law.co.kr/bbs/board.php?bo_table=search&wr_i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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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승 변호사 프로필-박근혜 대리인단 추가



정기승(鄭起勝, 1928년 7월 23일 충청남도 공주시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공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홍성지원장, 서울형사, 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부원장, 서울민사, 형사지방법원장을 거쳐 1985년 전두환 대통령에 의하여 대법원 판사에 임명되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에 의하여 대법원장으로 지명되었으나, 국회 본회의에서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어 대법원장이 되지 못하였다.


1998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을 창립하여 회장이 되었다.


2009년 서울대 법대 동창회는 제17회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으로 정기승 전 대법원 판사를 선정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A%B8%B0%EC%8A%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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