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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전 검찰총장 프로필 및 관련이슈(검사시절,혼외자)


이름 채동욱 (蔡東旭)

출생일 1959년 1월 2일

출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 1981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 세종고등학교


경력

서울고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장검사

부패방지위원회 법무관리관

대전고검 검사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서울고검 검사장

39대 검찰총장

경력

2013.04 ~ 2013.09 제39대 대검찰청 검찰총장

2012.12 제42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2011.08 ~ 2012.12 대검찰청 차장검사

2009.08 ~ 2011.08 제18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2006.02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2005.07 국가청렴위원회 법무관리관

2005.04 부패방지위원회 법무관리관

2005 ~ 2006.02 부산고등검찰청 검사

2004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지청장

200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장검사

1982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수상

1991 대통령 근정포장

- 황조근정포장


이슈

출범 초기였던 박근혜 정부 내부인사가 아니라,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서 임명된 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그러다보니 취임시 정치권력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안팎의 기대가 매우 높았고, 동시에 청와대에서 내심 마뜩잖아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통제할수 없는 인물

2013년 4월 2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이 "한 번 파보라고 했더니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온다."라고 말한 것에서'파도미(파도 파도 미담만)'라는 별명이 유래되었다. 

이때 작게나마 기사화된 일화인데 채동욱은 과거 평검사 시절 난방도 가동되지 않는 냉방에 살았는데,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려 패혈증으로 번지면서 뇌성마비에 걸렸었다. 의사들은 딸이 5년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지만 지극한 보살핌으로 키워 왔는데, 부부 모임 때면 채 총장은 항상 딸을 데리고 나왔다. 모임이 길어져 떼를 쓰며 울게 되면 그때마다 품에서 머리빗을 꺼내 아이의 머리를 빗어주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딸은 그소리를 듣고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의료진이 정연씨가 5년밖에 살 수 없다고 했지만 22년이나 생존하다가 채동욱이 검찰 총장이 된 이후에 죽었다. 채동욱의 자식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는 일화. 훗날 혼외자 문제가 터지자 이때의 일화가 재조명 되었다.

2013년 4월~ 9월 불과 6개월 밖에 안되는 짧은 재임기간 중 고질적 문제였던 전두환의 미납추징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두환으로부터 미납추징금 완납계획을 받아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미납추징금도 완납받았다. 이러한 조치는 국내외에 주목을 받으며 매우 좋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원칙대로 밀어붙어 붙이며 수사에 의욕을 보였으나, 2013년 9월 6일 혼외자식 의혹을 조선일보가 제기하였고 법무부 장관 황교안이 감찰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청와대는 진상규명을 압박했고 결국 사표 제출에 이르게 되었다. 기사 9월 30일 청와대는 사표를 수리했다.

부하직원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존경을 받았던 사람으로 유명해서 그의 낙마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의 낙마와 관련해서 당시 야권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연관되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덮기위해 조선일보를 통해 채동욱의 개인정보를 흘려 수사 중이던 검찰 총장을 찍어내려고 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2016년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하였다. 출연 이유를 묻자 아내가 팟캐스트를 좋아해서 아내 따라 왔다.고 말했다. 단촐한 츄리닝 복장으로 들어와서 대담을 나눴다. 한가롭게 백수로 잘 지내신다고.. 5개의 질문과 1개의 발언을 조건으로 걸었는데, 문자 그대로 촌철살인과 팩트폭력이 뭔지 보여줬다. 

먼저 왜 검찰총장에서 물러났느냐는 질문에, 법대로 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검찰수사에 대해서 청와대가 가이드 라인을 내리는지에 대해서 인정했으며, 그 당시 폭풍의 핵이었던 댓글수사에도 가이드 라인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가이드 라인이 뭐였냐는 질문에 법대로 수사하라가 진짜 지시였다고 답했는데, 거기에 왜 시키는 대로 법대로 처리 했는데도 해임당한거냐는 질문에 대해서 '눈치가 없어서...자기만 빼고 법대로 였는데...' 라는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또 왜 검찰이 유독 권력의 말에 쉽게 굴종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인사권이라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말 잘들으면 승진시키고, 말 안들으면 물을 먹이니, 검사들이 윗 사람들 눈치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된 거 같다고 답했다.

최재경 신임 민정비서관에 대해서는 매우 유능하고 뛰어난 검사였다라고 평했지만,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서 주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우병우에 대한 수사가 잘 풀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덤덤한 태도로 잘 될거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짧고 깔끔하게 답했는데, 끈이 떨어졌으니까.라고.[5] 후배검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는 지금이 국민들이 검찰에 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뚝심있고, 올바른 자세로 수사에 임해주길 바란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했으며, 국민들에게는 정말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더 검찰을 믿어주시라는 말을 남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임수빈 변호사와 함께 물망에 오르고 있다. 네티즌은 이정희가 맡아주는 통쾌함을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경력과 당적으로 인한 자격 미달이다보니 단순히 유능하고 신뢰가는 인물임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얽힌 것도 있어서 이정희만큼 재밌는 구도가 나올거라는 기대 하에 여론은 채동욱이 특검으로 위임되길 바라고 있다. 이와 관련된 진행사항은 특검 참조.

그리고, 2016년 11월 15일, 채동욱은 JT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의가 들어온다면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히 지키면서 철저하게 수사할 겁니다."라면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다만, 채동욱은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특별검사로 추천을 받으려면 변호사 등록부터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언론의 의혹 제기와 혼회자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단 검찰의 수사는 채동욱을 피의자로 수사한 것이 아니며, 채동욱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수사하면서, 혼외자 의혹이 사실인지 여부도 함께 조사해 본 것이다.

일단 혼외자식이 있다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불법은 아니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혼인 이전에 두었거나, 미혼이나 이혼 사별로 배우자가 없는 경우, 동거인과 혼외자를 둔다하도 아무런 불법이 아니며[7] 물론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도[8] 승낙할 때에는 법적은 물론 민사적인 책임도 없다. 해방이전 그리고 해방이후 상당기간 동안 옛풍습 때문에 관습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례가 남아있었고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다만 공무원의 경우 축첩이나 사생아는 해방이후부터 1950~1970년대에도 결격사유로 승진철마다 투서가 자주 날아다닌 사유이긴 하다. 법적으론 중혼이나 축첩은 불법이며 간통이 폐지 되기 전에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을 경우, 간통으로 처벌받을 대상이긴 하나 배우자가 묵인 또는 추인할 경우 혼외로 자식 낳지 말란 법도 없고 혼외자라해서 차별받으라는 법도 없다. 다만 공무원 신분상 이 의혹이 사실이면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혼외자를 둔 것이 죄가 아님에도 혼외자 수사가 이뤄진건 혼외자 여부를 폭로한게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이기 때문이었다. 채동욱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군의 개인정보를 서초구청 국장인 조이제가 무단으로 열람하여 국정원 직원에게 유출했고 이 과정에서 지시나 공모가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한것. 결국 유출자와 국정원 직원 1인만 처벌되고, 청와대나 국정원등의 개입여부는 가리지 못 했다.

검찰은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된 명예훼손 사건과 청와대의 개인정보유출 개입 의혹 대해서는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관련자들의 정보조회행위에 대해서 정당한 직무권한에 포함되는 활동으로 판단했다. 검찰의 이러한 판단은 채동욱 망신주기성 기획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 경과는 먼저 조선일보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가 있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간통죄 폐지 전이므로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이 불법을 저지른채, 법으로 심판하는 위치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되기 때문에 뜨거운 논란이 됐다. 이 보도에 대해 채동욱 당시 총장은 바로 다음날 공식 성명을 내서 반박 발표를 하며 유전자 검사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내놓았고, 또한 조선일보에도 정정 보도 청구 소송까지 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로 판단하자는 이야기에 대해, 어른들의 정치 문제로 발생한 문제를 12살 아이에게 전가하여 온국민 시선 집중된 가운데 친부를 확인하는게 과연 옳으냐하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더군다나 임모씨나 12살 채군 입장에선 친부가 누구인지 여부는 개인의 사생활이라 공개해야할 의무도 없으며, 따라서 유전자 감식은 강요할수도 없다. 더구나 12살 어린이는 법정대리인 임모씨가 수락해야 가능한데 현재까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


2013년 법무부는 감찰 결과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은 사실로 볼만한 증거와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2014년 검찰은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이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며 여러 증거와 진술을 열거했다. .

또한 검찰 관계자는 "친자관계는 유전자검사에 의하지 않고는 100%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으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로 믿은 것을 추측하게 하는 언동, 혈액형 검사 결과와 같이 친자관계를 배제하거나 긍정하는 요소 등 간접사실과 경험칙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산부인과 병원진료 기록, 초등학교 학적부, 유학신청서류 '보호자'란에 손글씨로 채동욱이라고 적혀있다.

- 채 전 총장과 임 여인, 아이가 셋이서 색깔을 맞춰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

- 임 여인과 채 군이 평소 외부에 '아빠가 채동욱 검사'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 임모 여인이 채 전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 내용에 아이 아빠가 채 전 총장이라는 내용이 있다.

- 임씨의 가정부가 채 전 총장의 자필 연하장을 받았다는 정황 근거가 있다.

- 계좌 추적 결과, 채 전 총장이 제3자를 통하여 임씨에게 수천만원을 송금한 적이 있다.

- 임씨와 통화내역

출처 :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B1%84%EB%8F%99%EC%9A%B1


이렇듯 혼외자 여부가 사실이 아니다 하더라도 임모씨와 채총장이 친밀한 사이인게 드러났다. 임모씨가 채모군의 성을 채씨로 고른건 채총장과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채총장을 존경하는 마음에 한걸로 보인다. 다만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채동욱은 자신이 혼외자에 대한 아무런 책임이 없는데, 엉뚱한 여자가 자기자식이 생부가 채동욱이라고 주장한 꼴이라 사실이 아니라면 임모씨에게도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유전자 검사를 요구해도 실상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채동욱 전 총장이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고, 임모씨가 거부하는 것에 대해 혼외자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측에서는 임모씨와 채총장이 서로 짜고, 임모씨는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기로 약속하고 채동욱 총장더러 강하게 유전자 검사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만약 혼외자 의혹이 거짓이라면 단순 소문이라도 공직자로써 물의를 일으킬 내용이기에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임모씨에게 하지말라고 주의를 줬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일회성도 아닌 여러차례에 걸쳐 말했던 임모씨에게 제지하지 않은 점은 의혹을 묵인한 셈이 되어 의혹을 더 커지게 만들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2016년 현재까지도 정확한 사실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는 채동욱 전 총장과 친분이 있는 임모씨가 동의해야 가능한데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게 검찰이나 채총장 모두 양측의 주장을 증명할 길이 없다. 한편, 채동욱의 혼외자를 낳은 내연녀로 알려진 임정순씨는 채동욱과의 관계를 이용해 형사사건을 청탁받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하 검찰수사는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대해서 원출처인 개인정보유출 처벌과 청와대 내부감찰의 적법성을 가리기 위한 수사이지 채 총장 개인에 대한 수사는 아니다. 그러나 언론과 세간의 관심은 혼외자 의혹에만 집중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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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프로필 및 검사시절 이야기


이름  우병우(禹柄宇)

생년월일 1967년 1월 28일(만 49세) ~

출신지 경상북도 봉화군

본관 단양 우씨 문희공파[1]

신체 174cm

당적 없음


경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제18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2011~2013)

민정수석실 비서관(2014~2015)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2015~2016)

ㅇㅇ

학력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병역 5급 제2국민역

종교 

불교

===============================

초년시절

1967년 1월 28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교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주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검사였다. 고3 때 담임의 회고에 의하면, “우 수석에게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병우는 어린 시절의 다짐과 달리, 부정부패한 사회와 정의가 없는 국가를 만들었다. 게다가 고3 때의 저 발언도 진정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의심받게 하는 일화가 존재한다. 

영주고등학교 재학 중, 우병우는 동창들 사이에 전설로 남을 행보를 했다.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교사가 있었는데, "그 교사에게 문제가 있으니 바꿔달라"고 우등생 친구들 몇명과 함께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요구한 것이다!! 결국 이사장이 이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어, 교사는 교체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명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면 학교의 위상이 달라지며, 영주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이사장으로서도 잘하면 서울대 입학도 노릴 수 있는 최상위권 성적을 가진 학생들의 말을 들어준 것이다. 이를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제보해준 고교 동창 친구의 말이 참 걸작인데, 아주 시니컬하게 "당시 나도 그렇고 병우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 싸가지가 없었고, 그게 잘못된 거라고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 전국석차 53위의 탁월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0세(!) 때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나이가 거의 10살 가깝게 많은 이종걸이 사시 기수로 따지면 우병우보다 1기수 후배다. 당시 29회 사법시험 최고령합격자는 1949년생이었다. 사시 합격 후 신체검사에서 고도 근시에 의한 ‘질병 또는 심신장애’를 이유로 신체등급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1990년 사법연수원을 제19기로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서 주로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다. 그때쯤 결혼을 했는데, 장인은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 그리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최태민이 우병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재벌집 사위로 장가가서 그랬는지, 그의 거만함을 빗대어 목에 깁스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젊은 시절 별명이 깁스였다고 한다. 사실 그도 그런 것이, 대한민국 검사라면 수사권 기소권 모두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인사다.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기업인들에게 대우받고, 정부 인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인물이었다.


검찰 내에서 수사능력만큼은 정평이 났던 우 전 수석이 부천지청장(차장검사급) 시절 평검사 등 후배검사들의 수사력 약화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그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는 증언이 나왔다.

검사시절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평검사 시절 서방파 행동대장 이양재, 대전진술파 두목,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수련의 임용과정에서 돈을 받은 피부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앙대학교부속병원을 적발했다.


1992년 8월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로 부임, 1993년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이사장 김일윤 전 의원을 학교공금 53억 원 횡령혐의로 기소하고,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청탁한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하는 등 신나게 칼을 휘두르던 중, 정권 핵심에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를 수사하다가 졸지에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으로 내쳐졌다고 한다.


이 무렵 장인 이상달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장인 이상달은 기흥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 기흥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재향경우회가 사업권을 받아 만든 골프장 사업체였다. 그런데 이 사업 지분의 과반수 이상이 이상달과 그 지인에게 넘어간 것이 드러나자, 1993년 5월 경찰은 이상달이 전직 치안본부장 등 경우회 간부에 뇌물을 공여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6월에는 전 치안감이자 경우회 이사인 옥기진이 이상달에게서 다방운영권을 넘겨받아 이익을 챙긴 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전직 치안감인 옥기진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때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도 함께 구속되었다. 1993년 7월에는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역시 이상달에게 1천만 원을 받았다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후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1부는 이상달에게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는데, 사건 자체가 전직 치안총수가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범인 이상달이 달랑 징역 3년형에 그친 것은 검사 사위 우병우가 무마해준 덕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후 1994년 2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2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9년 2월부터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근무하고,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에 부임했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특별 수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 송해운·윤대진 검사[16]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불렸다.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 8월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올라왔다. 그 시절 이정일 민주당 의원,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도 소환조사했고,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와 권오정 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 심기섭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 등도 그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해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그룹은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으나,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결국 신상규(서울중앙지검 3차장)-채동욱(특수2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2003년 12월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우병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 회장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어쨌든 이러한 분리기소는 2007년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4년 6월에는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을 달았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대구 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강신성일 의원,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등을 구속시켰다. 그리고 2005년 4월에는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6년 1월 법무부 홍보과장 재직시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다. 당시기사 (대략 1분후부터)

http://www.ytn.co.kr/_ln/0103_200601051950002582


2007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서 예금보험공사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장으로 파견되었다. 2008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로 활약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의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씨를 구속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했는데, 그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였다. 구속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김평수에 대해 반 년 이상 추가 수사를 벌여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출처 : https://namu.wiki/w/%EC%9A%B0%EB%B3%91%EC%9A%B0#f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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