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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프로필(김정은 이복형제) 김정남피살??


이름 김정남(金正男)

출생 1971년 5월 10일, 평양

사망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본관 전주 김씨

학력 제네바 대학교 정치학 학사

가족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성혜림, 배우자 신정희, 슬하 3남 1녀

소개

김일성의 손자이며, 김정일의 첫째 아들. 그리고 사생아. 미혼이던 김정일과 유부녀였던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1971년 5월 10일생. 21세기 이후로는 중국이나 마카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등의 동남아시아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등지에서 중국의 신변 보호를 받으며 자주 출몰한다. 북한 내에서도 적이 많다고 알려졌다. 


두 번의 입국 금지 전력이 있다. 첫번째는 2001년 일본입국을 시도하다 거부당해 베이징으로 돌아간 거고 두번째는 2007년 마카오에서 홍콩으로 들어올려다 홍콩 입경처가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입국을 거부한 것.

김정남이 태어날 때 할아버지도 득남했다. 김정남은 작은아버지인 김현과 같은 해(1971년)에 태어났다.


성혜림의 조카, 김정남의 이종사촌이자 탈북자였던 故 이한영의 회고에 의하면, 어린 시절에 상당히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복동생들이 태어나고 어머니인 성혜림이 김정일과 멀어지면서 총애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도 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데 한 몫 했다는 얘기가 있다. 젊은 시절엔 할아버지와 아빠처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게 생활했다고 하며, 젊은 시절에 북한의 외국인 전용(겸 고위층용) 나이트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싸우게 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천장에 쏴버렸다. 이에 분노한 김정일이 허리띠를 뽑아서 그걸로 엄청 때렸다고 한다.

대표적인 북한 연구자인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온갖 명품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밖에 나가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제외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커가면서 망신도 당하고 권력 승계에서 멀어지자, 처세의 일환으로 자중하는 듯하다.


권력계승

김정일의 첫째 아들이란 점에서 남한에서 한때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지목된 적이 있다. 다만 김일성 시대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일은 자신의 자식들을 일찍 후계자로 정하지 않고 있어서 김정일만큼은 주목받지 못했었다. 겉으로 드러난 정보가 가장 많은 아들이었기에, 가장 인지도는 있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탈을 쓴 전제왕조나 다름없는 북한에서 정실 부인이 아닌 유부녀와의 불륜 관계로 태어난 김정남은 종법제에 의하면 이른바 사생아 혹은 서자 정도의 위치인지라 계승에 장애물이 있다. 실제로 김일성이 아직 힘이 있고, 김정일이 아직 후계자로 내정되지 않았을 땐 김정남의 존재는 김정일의 권력 계승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숨겨서 키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성혜림과의 관계가 불문이었기 때문에 김정남이 태어난 후에 김정일은 김일성이 직접 짝지은 김영숙과 혼인하게 된다. 결국 김영숙은 김정일의 정실 부인이 되는 셈인데, 김영숙은 장녀인 김설송을 포함해 딸만 둘 낳은지라 아쉽게도 김정일에겐 이른바 적통(...)이 없는 상황인지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셋째 부인 고용희 소생인 김정은이 결과적으로 권력 계승에 성공하였다. 고용희는 후처지만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기 때문에 정통성이 밀린 듯하다. 더불어 김정은 역시 고용희 미화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 시키고 있다. 

2010년 9월 남동생 김정은이 대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보아 김정남은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 듯하다. 물론 아직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일단 김정남은 김정은이 정식 후계자가 된 것에 대해 '3대 세습을 반대한다'면서도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을 거다. 정은이가 도와달라고 하면 돕겠다'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선 권력에 대한 미련을 보인 거라는 둥, 세습은 반대해도 정은을 반대하는 건 아니라는 둥, 사실상 망명 상태라 그로 인한 반감이라는 둥, 나름대로 북한에 대한 서양의 반응을 생각한 거라는 둥, 추측이 다양하다.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으로 행보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일단 예정대로 김정은 후계 체제로 돌입하고 있지만 내부 지지기반만 없다 할 뿐 경력이나 공로, 경험 면에서 훨씬 더 우월한 김정남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김정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피바람이 불지, 아니면 김평일처럼 영원한 떠돌이 신세가 될 지 알 수가 없다.

김정남이 단순히 한량이거나, 쫓겨나서 떠도는 신세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이 설에 따르면 김정남은 김정일의 지시로 해외에서 자금줄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으며, 특히 마카오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자금 세탁 라인의 책임자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교민에 의하면 마카오.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돌아다니고 간혹 프랑스에도 가며 현재는 쭉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에는 홍콩에 입국할려다 거부당하기도 했다. 


기이한행보

이상하게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김정남은 순전히 외모 때문에 불공정하게 오덕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빈번한데, 2001년 5월 1일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은 아키하바라 방문 목적 운운하며 비웃을 일이 아니라 중대 정치 뉴스였다. 이게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김정남은 북한에서의 위치 덕분에 암묵적으로 사실상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당연, 실제로 김정남의 위조 여권에는 이미 여러번 일본을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일본은 김정남을 불법입국자 수용소에 처넣었고 5월 4일에 추방해버렸다. 이때 김정남은 비행기 1등석을 모조리 사버리는 돈지랄을 통해 비행기까지 쫓아온 기자들을 따돌렸다.

이를 두고 미국이 김정남의 밀입국 정황을 미리 포착하고 CIA를 통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카더라도 있었을 정도다. CIA 개입설은 해당 링크에서 한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부정되지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거 자체가 일본이 김정남을 밀입국자 취급한 게 얼마나 당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증거다. 김정일이 노발대발할 만한 일 맞다. 또한 김정일이 노한 것에는 김정남이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했다는 점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일부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일본 밀입국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이복 동생들에게 상당 부분 밀려나 있던 그가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린 사건이라고 평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C%A0%95%EB%82%A8(%EB%B6%81%ED%95%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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