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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 자서전 막말 5.18 희생자?




이순자 여사가 자서전을 출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인 이순자 여사는 오늘(24일) 

'당신은 외롭지 않다'는 제목의 720쪽 분량 자서전을 출간했습니다.





24일 약 720쪽 분량의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출시했다고 하네요.

자서전 내용 중에 논란이 되는 부분은 1996년 재판 당시 5·18 희생자의 영가천도 기도를 올려달라고 하면서 

한 스님에게 


저희 때문에 희생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이지만” 


등의 표현을 쓰며 자신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서술했는데요.. 



5.18사태라니요?


국가에서 정한 공식명칭이 광주민주화운동인데, 그렇게 말하기는 남사스럽나요?





관련기사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324000630


자서전은 이순자 여사 뿐만 아니라 전 전 대통령 본인도 다음달 초 출간할 계획인데요.

과연 전두환은 어떤 내용으로 논란이 일지 궁금합니다.





관련기사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7032416228033952&outlink=1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책 내용을 소개하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고 솔직하게 썼다”

“그 책이 나가면 오해가 다 풀릴 것이다”라고 주장했는데요.


오해가 아닌 희생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더 모욕을 하는 것 같네요.


이제 두사람은 그만 소식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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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사병임에도 불고하고 표창받은 이유


국방에 최선을 다 했더니 "반란군의 우두머리"조차 표창장 주더라~ 가 깔만한 말인가요?

이건 뭐 진위여부 불문하고 모른 척, 무차별로 물어뜯기로 작정한 거군요.


미필이어서 군대를 아예 몰라서 라기보다, 캠프 인재들 정신세계가 걱정되고 할 말 없네요.

틀딱 집회 망언과 비교하며 "반란군이라고 했다고 호남인들에게 사과"라니요..



기사보기

http://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029013



우선 문재인이 사병임에도 불고하고 표창받은 이유는 

2등인 장교와..점수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라네요..

폭파는 계산을 잘해야 한답니다.


화약량을 얼만큼 써야 할지...어디에 폭탄을 써야...될지...


문재인 후보가 계산은 정말 잘했다는....글을 블로그 어디에서 본것 같습니다..

교육받다가 중간에는 교관대신해서 설명하는 역활도 했다고도 하네요.



"표창장 받은 경위도,

전군(공수특전단/해군/UDT/공군 등), 전계급(영관/위관/하사관/병)대상의, 기라성같은 사관학교 출신들도 출전한

'폭파 주특기' 경시대회 1등~!!

500점 만점에 495점~!!

그 다음 많이 받은 장교인 김동만 대위는 350점,

당시 병 에게는 줄 수 없었던 시절이지만 2등과 점수차이가 워낙 커서, 2차 회의 끝에 이병 문재인에게 수여하기로 결정

1975년의 일이니 광주항쟁(1979.10.26) 4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출처보기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312917&s_no=312917&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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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 프로필 및 소개




출생일 1936년 09월 27일, 전남 고흥군

직업 전직 정무직공무원

성별 남성

학력 육군사관학교


학력

~ 1960 육군사관학교



경력

1985 ~ 1987 제13대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1981.07 ~ 1985.02 제5대 대통령경호실 실장

1980 제3공수특전여단 여단장

1977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 단장

1967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대대 작전장교



프로필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33XXXXX21638



소개

제5공화국 당시 대통령경호실장, 국가안전기획부장을 역임했다. 이른바 전두환의 베리야.

제30경비단장으로, 직속상관인 장태완 장군을 배신하고 반란에 가담하였다. 장태완이 말한 "반란군놈의 새끼들", "역적놈의 새끼들" 중 한 명. 

게다가 실제로 장태완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장세동을)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시절

1981년, 현역 장군 신분을 유지한 채 제3공수여단장에서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여느 육군 장성들처럼 육군참모총장을 꿈꾸었던 장세동 개인으로서는 별로 원치 않던 자리였으나 각하가 하라면 해야지 어쩔 수 있겠나

이는 전두환이 허화평 대통령비서실 보좌관과 허삼수 사정수석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듬해인 1982년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이후 전두환이 경호실의 위상을 높여 허화평 허삼수를 압박하는 목적으로 장세동을 소장으로 진급시켜준다.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으로 인해 경호실장으로서 책임을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노신영 국가안전기획부장과 함께 유임되어 직책을 계속 수행했던 것을 본다면, 

전두환은 단순히 세력 견제용으로 장세동을 불러들인 차원을 넘어서서 권력다툼이 난무한 청와대 내부에서 장세동을 매우 신임하고 심적으로도 매우 의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4년 11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의 심복으로 찍혔기 때문에 같은 신군부 출신인 노태우가 집권한 후에는 전혀 권력을 얻지 못하고 청문회에 불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청문회에서는 비교적 당당한 모습으로 일관하여 "의리의 사나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그건 바로 조폭의 의리.


여러번 5공세력을 규합하여 정계에 진입하려고 했으나 너무나 음험한 이미지가 굳어져서 할 수 없었다. 

전두환이 나들이라도 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소위 "역사바로세우기" 때 전두환과 함께 구속되어 12.12때 반란 가담혐의로 3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의 

합의를 통해 사면되었으며, 그 이듬해 복권되었다.



이후

2002년, 수 많은 정치인들이 눈앞의 이익을 위해 당적을 옮기는 등 철새 정치인 행보가 이어지자 의리와 소신이 사라지고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자신과 같은 의리 있는 사나이가 나서야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고 국력을 신장할 수 있다 는 이유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기대한 전두환이 지원을 안해주면서 득표율이 처참할 듯 하자, 투표일 하루 전날 후보를 사퇴하였다. 


전두환의 말로는 출마 전까지 극구 반대했으나 기어코 출마를 해버리자 "장세동도 나이 먹으니 내 말을 안듣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무위키출처 : https://namu.wiki/w/%EC%9E%A5%EC%84%B8%EB%8F%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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