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프로필 및 검사시절 이야기
이름 우병우(禹柄宇)
생년월일 1967년 1월 28일(만 49세) ~
출신지 경상북도 봉화군
본관 단양 우씨 문희공파[1]
신체 174cm
당적 없음
경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제18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2011~2013)
민정수석실 비서관(2014~2015)
제4대 민정수석비서관(2015~2016)
ㅇㅇ
학력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병역 5급 제2국민역
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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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시절
1967년 1월 28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교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주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검사였다. 고3 때 담임의 회고에 의하면, “우 수석에게 왜 검사를 하려고 하느냐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병우는 어린 시절의 다짐과 달리, 부정부패한 사회와 정의가 없는 국가를 만들었다. 게다가 고3 때의 저 발언도 진정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의심받게 하는 일화가 존재한다.
영주고등학교 재학 중, 우병우는 동창들 사이에 전설로 남을 행보를 했다.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교사가 있었는데, "그 교사에게 문제가 있으니 바꿔달라"고 우등생 친구들 몇명과 함께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요구한 것이다!! 결국 이사장이 이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어, 교사는 교체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명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면 학교의 위상이 달라지며, 영주고등학교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이사장으로서도 잘하면 서울대 입학도 노릴 수 있는 최상위권 성적을 가진 학생들의 말을 들어준 것이다. 이를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제보해준 고교 동창 친구의 말이 참 걸작인데, 아주 시니컬하게 "당시 나도 그렇고 병우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 싸가지가 없었고, 그게 잘못된 거라고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 전국석차 53위의 탁월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0세(!) 때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나이가 거의 10살 가깝게 많은 이종걸이 사시 기수로 따지면 우병우보다 1기수 후배다. 당시 29회 사법시험 최고령합격자는 1949년생이었다. 사시 합격 후 신체검사에서 고도 근시에 의한 ‘질병 또는 심신장애’를 이유로 신체등급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1990년 사법연수원을 제19기로 수료한 후 검찰에 들어가서 주로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다. 그때쯤 결혼을 했는데, 장인은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 그리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최태민이 우병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재벌집 사위로 장가가서 그랬는지, 그의 거만함을 빗대어 목에 깁스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젊은 시절 별명이 깁스였다고 한다. 사실 그도 그런 것이, 대한민국 검사라면 수사권 기소권 모두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인사다.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기업인들에게 대우받고, 정부 인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인물이었다.
검찰 내에서 수사능력만큼은 정평이 났던 우 전 수석이 부천지청장(차장검사급) 시절 평검사 등 후배검사들의 수사력 약화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그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는 증언이 나왔다.
검사시절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평검사 시절 서방파 행동대장 이양재, 대전진술파 두목,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수련의 임용과정에서 돈을 받은 피부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앙대학교부속병원을 적발했다.
1992년 8월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로 부임, 1993년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이사장 김일윤 전 의원을 학교공금 53억 원 횡령혐의로 기소하고,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청탁한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하는 등 신나게 칼을 휘두르던 중, 정권 핵심에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를 수사하다가 졸지에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으로 내쳐졌다고 한다.
이 무렵 장인 이상달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장인 이상달은 기흥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 기흥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재향경우회가 사업권을 받아 만든 골프장 사업체였다. 그런데 이 사업 지분의 과반수 이상이 이상달과 그 지인에게 넘어간 것이 드러나자, 1993년 5월 경찰은 이상달이 전직 치안본부장 등 경우회 간부에 뇌물을 공여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6월에는 전 치안감이자 경우회 이사인 옥기진이 이상달에게서 다방운영권을 넘겨받아 이익을 챙긴 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전직 치안감인 옥기진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때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도 함께 구속되었다. 1993년 7월에는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역시 이상달에게 1천만 원을 받았다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후 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21부는 이상달에게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는데, 사건 자체가 전직 치안총수가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범인 이상달이 달랑 징역 3년형에 그친 것은 검사 사위 우병우가 무마해준 덕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후 1994년 2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2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9년 2월부터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근무하고,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에 부임했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특별 수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 송해운·윤대진 검사[16]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불렸다.
2002년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2003년 8월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올라왔다. 그 시절 이정일 민주당 의원,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도 소환조사했고,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와 권오정 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 심기섭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 등도 그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해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그룹은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으나,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결국 신상규(서울중앙지검 3차장)-채동욱(특수2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2003년 12월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우병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 회장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어쨌든 이러한 분리기소는 2007년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4년 6월에는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을 달았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대구 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강신성일 의원,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등을 구속시켰다. 그리고 2005년 4월에는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6년 1월 법무부 홍보과장 재직시 한 언론과의 전화인터뷰다. 당시기사 (대략 1분후부터)
http://www.ytn.co.kr/_ln/0103_200601051950002582
2007년 2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서 예금보험공사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장으로 파견되었다. 2008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로 활약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의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씨를 구속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했는데, 그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였다. 구속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김평수에 대해 반 년 이상 추가 수사를 벌여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출처 : https://namu.wiki/w/%EC%9A%B0%EB%B3%91%EC%9A%B0#f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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